2009년 11월 14일 토요일

가지고 싶은 기기임에는 틀림없다.

[IT]후지쯔, 2단 분리되는 신형 휴대폰 발표

AP2EA6.JPG
상당히 실용성이 있는 제품으모 보인다.
언제 어디서든 사용할수 있것이 장점으로 보인다.

Dual Electronics, 아이폰/아이팟 터치를 위한 거치대 및 배터리팩

가지고 싶은 기기 중하나..

우리나라에선 아직 맵이 적용이 안되겠지만 빨리 나오기를 기대한다.





[IT]안드로이드2.0 과 노트북

ICD Vega, 안드로이드 2.0 탑재의 타블렛 PC 공개 originally appeared on Engadget Korea on Sat, 14 Nov 2009 10:19:00 EST. Please see our terms for use of feeds.

나도 이렇게 해보고 싶다

[IT]로봇 청소기 룸바 - 우리집에도 하나 살까 생각중.

팩맨으로 변신한 로봇 청소기 룸바! originally appeared on Engadget Korea on Thu, 12 Nov 2009 03:21:00 EST. Please see our terms for use of feeds.

[IT]펼치는 전자책 - WISTRON

위스트론(Wistron)의 접고 펼치는 전자책 내년에 출시?? originally appeared on Engadget Korea on Thu, 12 Nov 2009 13:37:00 EST. Please see our terms for use of feeds.

[IT]헬로키티폰

소프트뱅크에서 내놓은 새로운 헬로키티폰! originally appeared on Engadget Korea on Thu, 12 Nov 2009 17:19:00 EST. Please see our terms for use of feeds.

[강의] 초보자를 위한 트위터(Twitter) 완벽 활용

http://lovesera.com/tt/419


[강의] 초보자를 위한 트위터(Twitter) 완벽 활용

http://lovesera.com/tt/419


아이폰, 몇 대나 팔릴까?

아이티 관련 블로거들의 이야기.

트위터로 돈 벌수 있는 방법

http://stingguri.com/1955846

SNS 관련 서비스 트랜드를 보다가 공유하면 괜찮을것 같아서 몇자 적어본다.
...

[블로깅] ebook이 mp3의 시장형성 과정을 그대로 밟지 않기를 바라며 쓴 블로그

http://searching.egloos.com/tb/2441718

너무 와닿는다.

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광고] 신선한 블로그 하나

GOODgle.kr


http://goodgle.kr

[뉴스]LG텔레콤, 2013년 4G 전국망 구축

[디지털데일리 채수웅기자] LG텔레콤이 오는 2013년을 목표로 차세대 전국망 구축에 나선다.

LG텔레콤은 10일 제2차 방송통신망 고도화 추진협의회에서 코어망과 서비스제어 플랫폼을 궁극적으로 ALL IP망으로 전환시키고 차세대 액세스망을 오는 2013년까지 전국에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와 관련 LG텔레콤은 최근 차세대 망 구축에 돌입했다. 지난달 말부터 멀티모드 기지국 구축에 나섰다. 멀티모드 기지국은 기존의 2G, 3G는 물론, 차세대 이동통신인 4G를 지원할 수 있는 장비를 한 곳의 기지국에서 모두 수용할 수 있다.

이 미 리비전A 전국망 구축이 완료된 상황인 만큼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의 시작으로 봐도 무방하다. 특히, LG텔레콤이 도입한 멀티보드 기지국 장비는 와이브로를 지원하지 않아 사실상 LTE로 차세대 네트워크 표준을 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LG텔레콤은 올해 말부터 차세대 장비 개발과 함께 저대역주파수를 확보하고 인빌딩 투자 확대 등을 통해 커버리지를 늘릴 계획이다. 또한 2011년 주파수 재할당이 이뤄지는 7월부터는 현재의 1x/리비전A망의 고도화도 추진할 예정이다.

다만, LG텔레콤의 차세대 망은 일정기간 리비전A와 LTE와 혼재된 방식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차세대 네트워크 투자가 대규모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대도시에 우선 4G 망을 구축하고 외곽지역은 3G로 커버하는 것이다. 때문에 멀티 네트워크 오퍼레이션이 빈번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LG 텔레콤은 "이동통신 시장이 포화됨에 따라 신규 주파수는 사업자 매출 등 수익측면 보다는 속도 개선 등 이용자 혜택 증진의 의미가 커지고 있다"며 "따라서 차세대망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적정한 대가 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채수웅 기자>woong@ddaily.co.kr

*원문보기

2009년 11월 10일 화요일

[일반]아이를 위한 로봇


다양한 기술이 집약된 여러 성능을 보여주는 로봇을 많이 보셨을텐데요. 이번에는 여러 노력(?)이 집약된 재미있는 로봇 하나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이 로봇은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에 흥미를 많이 느낄 수가 있을텐데요. 실제 로봇이 된 듯한 느낌으로 어린 아이가 로봇 속에 직접 들어가서 움직이면 로봇과 일체가 되어 마치 자신이 로봇이 된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특별한 기술을 보인 건 아니고요. 이 로봇을 만든 재료는 다름 아닌 골판지와 휴지를 다쓰고 나면 나오는 롤, 그리고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색을 입혔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인데요. 예전에 태권브이에서 주전자를 뒤집에 쓰고 깡통로봇으로 변신했던 철이라는 캐릭터가 생각이 납니다. 다음 페이지에 관련 동영상이 준비되어 있으니 참고해 보세요.

b band 사무실

Posted by Picasa

[사설]이상에 대하여

항상 오감을 깨우고 살아야지..

수많은 사회의 현상을 관찰하고,
그 현상에 대한 많은 글들과 매체를 접하고,
이를 통해 접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분류, 분석, 판단하고,
그 후 자신만의 생각으로 정리하는 것.
그리고 그 생각을 글로써 표현하는 행위.

이 행위는 사람이 살아가는데에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절차를 통한 사람들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글쓰기 능력과 말하는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면에서 항상 오감을 깨우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사는 사회를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지고, 냄새 맡으며 세상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매우 사소한 농담에서 부터 시작하여 정치,사회,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매우 깊은 대화까지 가능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렸한 사람.
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출처:꿈을 가진 리얼리스트]

[광고]쇼 옴니아 m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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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easyitblog.com/90072473368

(수정) 괴물스펙 쇼 옴니아 (SPH-M8400)




지상파DMB,, 3.5파이..... 헐........................

IPTV, WIBRO, WI-FI, 내장4GB, GPS, FM라디오... (그외 SKT 옴니아2와 동일)
리뷰가 사실이라면 괴물스펙이네요....
(개인적으로 QOOK & SHOW 로고가 용서될 정도로...)

- 안테나는 FM 라디오 수신용이 아닐까요?

(수정) 괴물스펙 쇼 옴니아 (SPH-M8400)

글쓴이 분께서 정정하셨습니다. 3.5파이 이어잭 & 지상파DMB 없는듯 합니다......

애플의 신개념 책 - apple phonebook

새 창에서 보기
(참조: 하테나 블로그 - 아이폰과 책이 만나면)

iPhone과 Book을 접목시킨 PhoneBook이라는 컨셉을 재밌게 소개하는 동영상이다. 정말 저런 제품이 있으면 당장 사서 우리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가격대는 크게 문제되지 않고 아마 컨텐츠 양이 풍부하기만 하면 끝일 것 같다. 그나저나 이 동영상을 보면서 느낀점은 iPhone 열풍이 정말 끝이 없구나, 거품이 빠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구나이다. 닌텐도 이상으로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은 든지 오래다. 그리고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역시 작은 차이가 크은 결과를 만드는구나를 되새겨보기 싶어서이다.

아마존만큼이나 유명한 넥플릭스라고 온라인 DVD 대여몰이 있는데 얘네의 선조는 DVD오버나이트였다. 그러나 DVD오버나이트는 영화 컨텐츠가 충분치 않고 결정적으로 연체료를 부과했다는 점이 결국 오버로 작용 넥플릭스에게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그렇듯이 iPhone 앱스토어도 사실 비즈니스 모델만 봐서는 그렇게 새로운 건 아니다. 이동통신, 모바일 인터넷 분야에서 양면(Two Side)시장은 일본에서 NTT도코모가 "i-mode"라는 이름으로 10년전에 시작했다. 그 당시 지금의 i자도 먼저 붙였고 폐쇄형이긴 하나 마켓플레이스 모델로 메일, 커뮤니티, 게임 등 사업자들을 끌어들였다. 오히려 CP와의 수익배분은 애플보다 적게 가져갔다. 하지만 애플 iPhone 앱스토어의 차이점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와이파이를 흡수했다는 점과 사업자 수준이 아니라 개발자 수준까지 포섭했다는 측면이 그들을 좀더 개방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와이파이 채택, 이는 이통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휴대폰 시장에서는 큰 결정이다. 또한 관리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발자 에코시스템을 지향한 것 또한 그렇다. 작은 차이로 보이지만 큰 의사결정이였던 그것은 결국 전략과 실행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듯 하다.

2009년 11월 9일 월요일

[웃음]나 웃고있니?




배꼽 잡고 웃는 바다표범을 본 적 있는가?

데굴데굴 뒹굴면서 웃겨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바다표범의 사진이 19일 영국 데일리메일에 실려 눈길을 끌고 있다.

자연을 전문적으로 촬영하는 사진작가 마이클 허친슨이 순간적으로 포착한 사진 속에서 몸무게가 230kg인 이 바다표범은 하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뜻 보면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국 근해에 서식하는 이 회색 바다표범은 다 자라면 황소 크기인 2.8m까지 자란다고.



[비과학] 지구속 다른 문명

지구 속 비행일지

이 글은 미국이 50년간의 극비문서를 전격 공개한 자료이며 북극넘어 지저세계를 탐험한 탐험기록입니다. 이제까지의 통념으로 알고 있는 속이 꽉찬 형태의 지구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깨트리고 지구의 참모습은 남극과 북극에 개구부가 있고 지하세계에 고도로 발달한 지하문명이 존재함을 알 수 있는 놀라운 자료입니다.

나는 이 비행일지를 이름 없는 무명인으로 비밀리에 써야만 한다. 이 일지는 1947년 2월 19일에 행한 나의 북극비행에 대한 것이다.

사람들이 합리적이라 여기는 것들이 하찮은 것으로 변하고, 진리의 필연성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때는 바야흐로 온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다음의 문서를 밝힐 자유가 없다. 아마 그것은 대중의 애정어린 시선의 빛을 결코 보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의무를 이행해야만 하며, 장차 어떤 인류의 탐욕과 개발도 진리라는 것을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는 희망찬 세상에서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여기 기록해야만 한다.

I must write this diary in secrecy and obscurity. It concerns my arctec flight of the Nineteenth say of February in the year of Nineteen Hundred and forty-seven.

There comes a time when the rationality of men must fade into insignificance, and one must accept the inevitability of the Truth!

I am not at liberty to disclose the following documintation at this writing, perhaps it shall never see the light of public scrutiny, but U must do mt Duty and record here for all to read one day in a world which hopefully the Greed and Exploitation of certain of mankind can no longer suppress that which is Truth.



지구 내부의 핵심인 중심 태양과
함께 그림으로 표현된 양극의 구멍


나사(NASA)에서 공개한
지구 북극 위의 위성에서 찍은 사진

미 펜타곤 50년간의 극비문서
본 글은 미국 초대 남극 개척대장을 지낸 리차드 E. 버드( Richard E. Byrd 1888~1957) 해군제독이 1947년 2월 19일 북극 베이스 캠프에서 출발해 지구 속, 1,700마일(약 2,720km)을 비행해 들어가 지구 속 문명세계와 접하고 귀환한 뒤, 미국방성에 보고하기까지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비행일지이다.

본 글의 원제는 『북극너머 지구 속으로의 비행-리차드 E. q버드 제독의 행방불명된 비행일지(The Missing Diary of Admiral Richrd E. Byrd)』이다.

지구 속 문명세계를 직접 경험한 역사상 인물은 1829년 북극해의 해류에 떠밀려 북극의 열려진 구멍(굴뚝)을 통해 지구내부에서 2년 반을 살다 나온 올랍 얀센(Olaf Jansen 1811-1906) 부자와 1947년 2월 19일 북극 베이스캠프에서 출발, 북극너머 1,700마일을 비행 해 들어가 지구 속 문명인과 회견까지 하고 그들의 메시지를 가지고 온 『비행일지』의 저자 버드 제독 두 명뿐이다.

올랍 얀센의 지구 속 문명 견문기록은 이미 『지구 속 문명(원제: The Smoky God and other Inner Earth Mysteries)』이란 타이틀로 국내에 소개된 바 있지만, 독자들 대부분이 신기하기는 하나 도저히 믿어지지 않으며 책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말인지 알쏭달쏭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단 버드 제독의 비행일지를 한번 읽고 나면 지구 속 문명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과 당혹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고도로 발달한 지구 속 문명의 실체를 믿지않을래야 믿지 않을수 없으리라 확신한다. 그것은 이 비행일지 내용이 올랍 얀센이 전하고 있는 지구 속 문명의 정보와 너무 똑같을 뿐만 아니라 외계문명권에서 은하 인류들이 채널(Channel)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와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펜타곤(미 국방성)에서 50년 동안 극비문서로 취급되어 공개가 금지된 문서가 근래에 와서 공개된 사실만 보더라도 인류에게 줄 충격이 어느정도인지 가히 짐작할 만 하다고 생각된다. 한 최근 앨 고어 미 부통령의 제안으로 미국, 러시아 양국이 과거 냉전시절 40년간 군사목적으로 수집한 극해에 대한 놀랄 만한 비밀정보 공개와 지구 속 문명인으로부터 고등수학으로 이루어진 전파 암호를 수신하고 있다는 1997년 NASA의 발표는, 한 NASA 과학자의 논평 그대로 21세기를 코앞에 남겨둔 시점에서 기존의 고등종교가 제시한 세계관과 우주관을 송두리째 뒤집어야 할 20세기 최대의 메가콘급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인공위성이 촬영한 구멍이
뚫려있는 북극


구멍이 뚫려있는부분이
확대된 모습

비행일지

미국의 초대 남극 개척대장을 지낸 버드 해군제독은 1947년의 북극 탐험 도중 우연히 지구 속 2,720㎞를 비행해 들어가 지구 속 문명세계와 접하게 된다. 북극지방의 얼어붙은 빙하의 풍광 속에서 갑자기 기지사령부와 무선통신이 끊기면서, 그는 북극을 넘어(북극의 구멍을 통해) 지구 속 세계로 들어가며 환상적인 경험을 한다.

거대한 얼음과 눈이 시야에서 사라지면서 북극에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산맥과 계곡, 울창 한 숲들이 밝은 햇살과 함께 그의 쌍발 프로펠러 경비행기 밖으로 펼쳐졌다. 지구 밖에선 멸종되어버린 초대형 매머드들이 오가는 모습과 멀리 도시의 불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항공기의 조종장치들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 상태에서 그는 지구 속 인류에 의해 예인당한 후, 지구 밖에서는 볼 수 없는 최첨단 시설들에 의해 운송되어 그곳의 지도자와 회견을 하게 된다.

회견을 통해 버드 제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구 속 인류들이 많은 비행물체(흘루젤라드) 를 지구 밖으로 보냈으며 그들의 문화와 과학이 인류보다 수천년 앞서 있고, 지구 속 세계가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증인으로 자신이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그러나 메시지를 갖고 돌아온 버드 제독은 미 국방부(펜타곤)의 고위 참모회의에 의해 구금 되고, 비행일지는 열람금지의 극비문서로 압류당한다. 그는 자신이 알게 된 모든 것에 대해 침묵하도록 명령받았다.

[비과학]영능력자들이 본 미국의 미래 지도




윗 그림은 지축이 23.5도에서 0도로 바로섬에 따라 대지각변동을 일으켜 미국이 물속에 잠기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3명의 영능력자들의 비슷한 지도를 그려냈죠. 일본이 침몰한다는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닌데요, 일본침몰에 따른 해일이 미국의 서부해안을 강타한다는 내용이 되겠습니다.^^;

[역사]한민족의 위대한 유산

한민족의 위대한 유산

 

 

모든 언어의 꿈 한글

“말은 사람의 특징이요, 겨레의 보람이요, 문화의 표상이다. 조선말은, 우리 겨레가 반 만 년 역사적 생활에서 문화 활동의 말미암던 길이요, 연장이요, 또 그 결과이다. 그 낱낱의 말은 다 우리의 무수한 조상들이 잇고 이어 보태고 다듬어서 우리에게 물려준 거룩한 보배이다. 그러므로 우리말은 곧 우리 겨레가 가진 정신적 및 물질적 재산의 총목록이라 할 수 있으니 우리는 이 말을 떠나서는 하루 한 때라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조선말 큰 사전』 머리말 중에서)


1947년에 편찬된 우리나라 최초의 국어사전 『조선말 큰 사전』은 그 머리말에서 한글이 가지는 의의를 위와 같이 천명하였다. 위 내용처럼 선조들은 우리 후손들에게 너무나 많은 유산을 물려주었지만 그 중의 으뜸은 역시 ‘한글’이라 할 수 있다.

 

올해는 한글학회가 창립된 지 꼭 101주년이 되는 해다. 다른 해보다 조금은 특별한 제563주 한글날을 맞아 한글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함께 알아보고 한글이 우리에게 얼마나 위대한 유산인지 살펴보자.


한글은 세종대왕이 독창적으로 만들지 않았다

한글, 즉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한 것이 세종대왕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이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 또한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글 창제의 과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몇 가지 의문점이 남아있다. 전 세계의 많은 언어학자들이 제기하는 대표적인 질문 중 하나가 ‘세계 문자 역사상 가장 우수한 글자인 한글이 어떻게 한 개인에 의해 그토록 단기간에 창제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실제로 세계 문자역사상 그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세종대왕은 한글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 궁금증의 답을 풀기 위해 훈민정음을 비롯해서 몇 가지 사서를 살펴보자.

 

 

“이달 상감께서 친히 스물여덟 자를 만드시니 그 자는 고전(古篆)을 모방한 것이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 『세종실록』 계해 25년 12월 30일 두 번째 기사, 1443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근본 삼은 것으로 새로운 자가 아니라고 하신다면 곧 자형은 비록 옛날의 전문(篆文)을 모방하였더라도(…諺文皆本古字 非新字也 則字形雖倣古之篆文…)” - 최만리 등의 언문창제 반대 상소문 중에서, 1444

 

 

“우리 전하께옵서 정음 스물여덟 자를 창제하시고, 간략하게 예의를 들어 보이시면서 이름 지어 가로되 훈민정음이라 하시니, 상형해서 만들되 글자는 고전을 본뜨고(我殿下創制正音二十八字 略揭例義以示之 名曰訓民正音 象形而字倣古篆)”

- 『훈민정음 해례 서(訓民正音 解例 序)』정인지, 1446

 

“우리나라에는 옛날에 속용문자(俗用文字)가 있었으나 그 수가 갖추어지지 않고 그 모양도 정리되지 않아, 어떤 말을 형용한다거나 어떤 용처에 사용하기에는 부족하였다(…東方舊有俗用文字 而其數不備 其形無法 不足以形一方之言 而備一方之用也…)”

- 『훈민정음운해(訓民正音韻解)』신경준, 1750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글 창제에 대해 기술한 사서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내용은 ‘옛 글자’를 모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우리는 한글 이전에 이미 어떤 글자(세종대왕에게 영감을 주었을)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데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 ‘옛 글자’일 것으로 추정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림토 문자’이다.

 

 

『환단고기』 「단군세기」에는 기원전 2181년 단군3세 가륵임금 때 “삼랑(三郞) 을보륵(乙普勒)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게 하니 이것이 가림토(加臨土)이다”는 기록이 나온다. 또한 『단기고사』에 나오는 여러 기록들은 단군조선 시대에 이미 ‘문자’가 존재했고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가림토 문자는 그 창제동기(백성들의 편의)와 창제사상(우주원리)이 한글과 거의 동일할 뿐만 아니라 자음과 모음의 생김새 역시 매우 흡사하다. 가림토 문자가 한글의 원형일 것으로 추측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세종대왕이 혼자의 힘으로 전혀 새로운 문자를 창제했다기보다는 단군조선 때부터 전해 내려오던 가림토 문자를 더욱 정제하고 발전시켜 한글을 창제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글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위대한 유산일 수도 있음이다.

 

한글, 무엇이 그토록 뛰어난가?

 

 

정인지는 <훈민정음 해례본> 서문에서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도 전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 바람소리, 학의 울음소리,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이 글자를 가지고 적을 수가 있다”고 하였다. 실제로 한글은 배우고 쓰기가 쉬워 ‘아침글자’라고도 불린다.

 

중국어의 경우, 모든 글자를 외워야만 글을 쓸 수 있는 표의문자이다. 하지만 한글은 영어와 마찬가지로 표음문자이다. 그런데 영어는 철자 하나가 여러 가지로 발음된다. 예를 들어 ‘h’를 보면 how, show, english…에서 보듯이 하나의 ‘h’가 여러 가지로 발음된다. 결국 그 단어를 모르면 정확히 읽어내지 못한다. 그런데 한글은 하나의 철자가 오로지 하나의 소리만을 낸다. 그래서 기본 구성만 알면 무슨 글자도 다 읽을 수 있다.

또한 소리의 표현에 있어서도 일본어는 약 300개, 중국어는 약 400여개의 표현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진 반면 한글은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을 조합하여 약 8800개의 표현이 가능하다. 그리고 글자의 모양과 소리를 내는 발음 기관이 정확하게 일치한다. 예를 들어 ‘ㄹ’은 혀가 실제로 ㄹ에 가깝게 구부러진다. 또 ‘ㄱ’에 한 획씩 그으면 ㅋ ㄲ이 된다. 단순히 한 획을 그음으로써 동일한 발음기관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소리를 다르게 정확히 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무한할 정도로 풍부하게 철자 표기가 가능하고 사람의 발음기관에 따른 가장 과학적인 언어, 그것이 바로 한글이기에 콜롬비아 대학 동양사학과 교수 G.Ledyard는 한글에 대해 ‘문자 언어학적 사치’라는 예찬을 했다.

 

 

 

 

우리가 늘 말하고 쓰는 우리말이기에 오히려 잘 느끼지 못하는 한글의 우수성과 위대함은 사실 해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국의 존 맨이라는 역사 다큐멘터리 작가는 그의 저서 『알파 베타(ALPHA BETA)』에서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소개했다. 또한 미국의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가 94년 6월호에서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한 사실이나, 언어학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에서 세계 모든 언어의 순위를 매겼는데 그 1위가 바로 한글이라는 것은 이미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편 유네스코에서는 1989년에 ‘세종대왕 상(UNESCO King Sejong Prize)’를 만들어 해마다 인류의 문맹률을 낮추는데 공적을 세운 단체나 개인을 선정하여 상을 주고 있다. 1997년 10월에는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2007년 9월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 제43차 총회에서는 183개국 만장일치로 한국어를 국제특허협력조약 국제 공개어로 채택했다.

세계인들이 먼저 알아준 한글의 우수성,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한글의 우수성을 자각하고 한글의 위상을 세계에 분명하게 알려야 할 차례이다.

 

우리의 말과 글로 세계가 하나로

아직까지 영어가 대세인 지금 당장 현실화되기는 어렵겠지만 한글을 세계 공통어로 쓰면 좋겠다는 얘기도 이미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많이 언급된 바 있다.

 

한글로써 나타내지 못할 소리가 없어 국어 정보학회나 한글문자 세계화 운동본부 등에서는 국제 음성기호를 한글로 채택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유네스코에서는 ‘바벨계획’을 제안하여 언어 다양성과 정보 이용의 공평성을 높이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말은 있되 이를 적을 글자가 없는 소수 민족 언어 사용자들에게 그들의 말을 한글로 쓰도록 함으로써 소수언어의 사멸을 막는 것도 언어 다양성을 높이는데 큰 몫을 할 것이라는 제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첨단 정보화 시대가 된 현대에 와서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함은 오히려 더욱 빛나고 있다. 한글의 문자와 소리의 일치성은 음성인식률이 높아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에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키보드와 휴대폰 문자입력 속도 또한 어떤 문자보다도 빠르다. 대한민국의 초고속 인터넷 및 휴대폰 보급률이 세계 1위라는 것은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한글의 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세계가 점점 한 가족이 되어가고 IT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할수록 한글의 위상과 영향력은 더욱 높아져 갈 것이다. “장차 우리나라 말과 글을 세계 사람이 배워 가리라”(증산도 도전 5:11)고 하신 증산 상제님의 말씀이 바야흐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한민족의 위대한 유산, 모든 언어학자들이 칭송하는 인류의 최고의 문자, 한글. 한글이 전 세계에서 통용되며 지구촌 어디에서도 우리말과 글로 자유로이 대화하는 그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출처 : 월간개벽 2008년 10월호

 

“한글은 세계 어떤 나라의 문자에서도 볼 수 없는 가장 과학적인 표기체계이다” (미국 하버드대 라이샤워 교수)

 

한글은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영국 언어학자 샘슨 서섹스대 교수)

“한글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다른 모든 알파벳이 수백 년 동안 수많은 민족의 손을 거치면서 서서히 변형 개량되어 온 것인데 반해 한글은 발명된 글자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세계적인 발명품이다” (미국 메릴랜드대 램지 교수)

 

“한국인들이 1440년대에 이룬 업적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그래서 한글날을 우리의 휴일로서 축하하기 위해 나의 아파트로 학생, 교수 등을 초대해 파티여는 일을 20년 이상 해오고 있다” (미국 미시간대 매콜리 교수)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단순한 글자이다. 24개의 부호가 조합될 때 인간의 목청에서 나오는 어떠한 소리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세종은 천부적 재능의 깊이와 다양성에서 한국의 레오나르드 다빈치라 할 수 있다” (펄벅의 『The Living Reed』 서문)



[역사]7대 불가사의

고대 7대 불가사의(7 wonders in the world)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가운데 보이는 가장 큰 피라미드

기자의 쿠푸왕 피라미드

이집트 기자에 있는 피라미드는 모두 제 4왕조(B.C. 2600 ~ B.C.2480)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큰 것은 쿠푸왕의 피라미드이다. 높이가 무려 148미터에 이른다고 한다(현재는 137미터).

피라미드를 만드는데 사용된 돌은 무려 230~250만개. 돌 하나당 무게는 2.5톤이나 나간다. 이런 돌로 돌집을 쌓으면 무려 12만명이나 수용할 수가 있다고 함.



바빌론의 공중정원

바빌론의 왕이였던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메디아 왕국의 키약사레스 왕의 딸 아미티스를 왕비로 맞았다.

녹음으로 우거졌던 메디아에서 자란 왕비는 평탄하고 비가 잘 오지 않아 황량한 바빌론으로 시집오자, 항상 아름다운 고향의 푸른 언덕을 그리워하였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왕이 왕비를 위하여 메디아에 있는 어떤 정원보다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공중정원이라 불리는 이유는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닌 정원이 높이 솟아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계단식 테라스로 된 노대에 흙과 풀, 수목 등을 심어 멀리서 보면 마치 삼림이 우거진 작은 산처럼 보였다고 한다.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사냥, 다산과 풍요를 가져다 주는 신인 아르테미스를 모시기 위해 에페수스 사람들이 건설한 신전으로 기원전 6세기경에 만들기 시작하여 120년에 걸려 완성되었다.

높이 20미터 정도의 백색의 대리석을 깎아, 127개의 기둥을 이오니아 식으로 세우고 지붕을 이어 만들었다.

하지만 기원전 356년 10월, 헤로스트라투스라는 자가 후세에까지 유명해질 수 있는 일을 찾다가 고의적으로 이 신전에 불을 질렀다(덕분에 후세에까지 이름이 남아있긴 하다).

신전이 불타버리자 에페수 사람들은 재건에 착수하였는데 이때 그 곳에 살던 여인들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석 등의 귀금속을 팔았고, 각지의 왕들은 기둥을 기증하기도 하였다.

에페수스인들은 복구 사업을 하며 그 당시 가장 훌륭한 아테네의 파르테논 시전보다 2배나 더 크고 아름다운 신전으로 만들려고 마음먹고, 파르테논 신전이 높이 10미터 대리석 기둥 58개를 사용한 점을 감안하여 높이 18미터짜리 기둥을 127개나 사용하여 만들었다.

기원전 250년경에 완성되자 그 규모의 화려함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데 화려한 신전이 세워지고 그를 보기위해 관광객들과 상인이 몰려들어 영화를 누르던 에페수스시에 기독교의 물결이 밀려왔다.

우상 숭배를 금했던 초기 기독교인들과 에페수스인들과의 마찰은 당연히 일어날 수 밖에 없었고, 사도 바울도 이곳에서 우상 숭배를 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에페수스 사람들은 아르테미스 신전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기원 후 260-268년에 유럽에서 아시아로 이동해온 고트족들에 의해 신전은 약탈당하고 파괴되었다.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

제우스 신상과 파르테논 신전의 아테네 여신상은 페이디아스의 2대 걸작품으로 꼽힌다.

당대 제일의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만든 제우스 신상으로 높이 90cm, 폭이 6.6미터인 받침대 위에 세워져 있는데, 신상의 높이는 무려 12.4m로 천장에 닿아 있었다.

426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이교신전파괴령에 의해 신전이 헐리고, 그 후 지진과 하천의 범람으로 신역이 3-5미터 아래 모래층에 매몰되어 오늘날에는 남아 있지 않다.



지중해 로도스섬의 콜로서스(Colossus)

지중해에 있던 도시연합국가는 로도스섬에서 상업을 번성하고 지중해 유수의 무역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이를 마케도니아의 데메트리오스 1세가 함락시키기 위해 로도스를 포위하였는데, 도시연합국가 쪽이 그를 무찔렀다.

그 기념으로 36m짜리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청동상을 세우게 된다.

알려지기는 한손으로 눈을 가리고 항구 입구에 양다리를 벌리고 서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한다.

이 거상은 BC 225년경 지진에 의해 파괴되었다.



마우솔로스 묘

카리아의 통치자 마우솔로스의 무덤으로 그의 누이이자 미망인인 아르테미시아가 BC 353년~351년경에 지었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만들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건축가 피테우스와 예술가 스코파스, 브리악시스, 레오카레스, 티모테우스 등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거의 정사각형으로 지어진 이 묘는 그 둘레가 125m에 이르렀다고 한다.

훗날 지진으로 파괴된 것으로 보이며 남아있는 돌은 그 지방의 건물을 짓는데 다시 사용된 듯 하다.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

높이 135m의 이 거대한 등대는 세계 모든 등대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다.
프톨레마이오스 2세(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전성기때 왕)의 명령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이 등대의 꼭대기의 전망대에서는 수십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었고 램프의 뒤쪽 반사경으로 비치는 불빛은 43km나 떨어진 바다에서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햇빛을 반사시키면 160km 정도 떨어져 있는 배도 태울 수 있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은 기자의 쿠푸왕 피라미드이다.


※ 불가사의?
사실 영문으로 wonder라고 해서 경이로운 건축물을 뜻한다. 하지만 쿠푸왕의 피라미드는 불가사의라 부를만 하다.

쿠푸왕의 피라미드에 신비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사각형의 네 방향이 정확히 동서남북과 일치한다.
<= 충분히 가능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각변의 길이 오차가 1/10000 밖에 되지 않는다.
<= 무게 2.5톤이 넘는 거석을 쌓아만든 건축물이 길이 오차가 3/10000 은 현대 기술로도 많은 무리가 따른다(현대의 건설계에서는 2/1000 이하의 오차는 같다라고 본다)

20년간 쌓았다고 본다면 대략 1년에만 10만개의 돌을 쌓아야 한다.
<= 하루 평균 무게 2.5톤의 돌을 오차 3/10000 이하로 270여개나 쌓아야 한다. 이는 밤새 일해도 시간당 11개의 돌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40년간 쌓았다고 하면 그 반으로 줄어들지만 그렇다고 해도 불가능에 가까운 숫자이다.

지반을 어떻게 다졌을까?
<= 그와 같이 큰 건축물이 들어서려면 당연히 지반을 단단히 다져야 하는데 과연 어떤 방식으로 몇년에 걸쳐서 다졌다는 것인가? 지금도 지상 10m 짜리 건물을 지을때도 한 달은 족히 걸린다(더구나 요즘은 철심을 박고 콘크리트로 마무리하는데도 그렇다).

[역사]백제왕족, 일본에 나라를 세우다.

[역사X파일] 백제왕족, 일본에 나라를 세우다
 


 고대 동아시아 역사 연재1
 백제왕족, 일본에 나라를 세우다
 
 
2004년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한 일본 천황가의 뿌리는 백제인인가?〉는 일본왕가의 실체에 관한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천황가는 만세일계(萬世一係)라 하여, 대륙과 무관하게 한 핏줄계통으로 내려온 오랜 역사 를 자랑하지만 그것이 진실일까? 과연 백제황족2)과 일본왕조 건국은 어떤 관계에 있었던 것일까? (이하 ‘일본천황’을 통치자의 일반호칭인 ‘일본왕’으로 표기한다)
 
 
 한반도인, 고대 일본(왜)왕조를 최초로 열다
 고대 일본(왜)열도는 조몬시대( ~BCE 3C)와 야요이시대(BCE 3C∼CE 3C)를 거치는 동안, 도왜(途倭)한 대륙인과 한반도인들이 정착생활을 하며 새끼줄무늬 질그릇·쌀농사·조개무덤 등의 흔적을 남겼다. 경남(옛가야 유역)과 한반도에 가까운 일본 서부지역에서 발굴된 유적·유물이 동일하다는 것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한서 지리지』, 『후한서』에 ‘왜’라는 나라 이름이 처음 등장한다. 소국(약 100여 개)이 난립한 일본열도 전역에, 3세기말 최초로 국가형태로 볼 수 있는 야마타이(邪馬臺)왕조3)(소국연합)가 세워지지만 이때의 역사 는 의문투성이다.
 
 강력한 권력체제를 갖춘 일본 최초국가는 4세기말 깅키(근기近畿: 지금 나라현)지방의 야마토정권이다. 야마토(대화)정권4)은 4∼7세기 까지 주변의 카와치(하내河內), 오사카(大阪/難波), 나라(奈良) 등을 통합하여 통일왕조를 열고 급성장한다.
 


 
 백제왕국, 의식주문화와 정신문화를 왜국에 전해주다
 백제 근초고왕(재위 346∼375)은 백제귀족 ‘진모진’을 왜국에 파견하여 일본 최초의 백제조복(朝服)을 만들게 한다.
  『부상략기』 기록에 따르면, 당시 15대 오오진(응신)왕이 일본왕 최초로 한복(백제조복)을 입었으며, 그 후에 대대로 일본왕들이 입었고, 33대 스이코(추고: ?∼628년) 여왕 등극 때에는 참여한 만조백관 모두가 백제옷을 입었다고 전해진다. 18세기 고증학자 토우테이칸은, 고대논문 「일본결척」을 인용하여 “응신왕 시대에 백제왕이 봉녀(縫女) 2명을 보내주어 비로소 임금과 신하들이 한복을 입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때까지 서민들은 옷을 입지 않은 벌거숭이 모양이었다”고 지적했다.
 
 동경대 하니히라 교수는 “7세기말 당시까지 한반도 출신 이주민이 대부분이었고 원주민은 소수였으며, 이때까지 야마토(4C), 아스카(7C)시대 사람들은 한국 의복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었으며, 건국신화 대부분이 한국형이고 한국어를 사용하였다”고 말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백제는 삼국 중에서 선진문화를 가장 많이 일본에 전해준다. 4세기경 통일국가(야마토) 이후, 일본은 한반도에서 선진문화를 전수받아 급속도로 문명이 발전한다. 백제는 일찍이 근초고왕(4C) 이후부터, 아직기·왕인 등을 통해 선진학문과 책(오경) 등을 전수해주고, 무령왕∼성왕 이후는 불경·예술·학문·불교문화와 궁·절 등의 건축기술, 소도 제천(신교)문화 등을 집중적으로 전해주어 일본 고대 정신문명의 꽃인 아스카문화를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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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왕족, 고대 일본왕국을 건설하다
 KBS와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된 〈일본 천황가는 백제인인가?〉 프로그램을 보면, 최근에 일본 아키히토(明仁)왕이 “옛 칸무(환무: 781~806)왕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공식 발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대에 백제왕족들이 건너가서 일본왕국을 세웠다는 것을, 일본왕 자신의 입으로 명확하게 확인시켜준 것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이 이 프로에서 확인하여 밝힌, 백제왕족과 일본왕족의 관계에 관한 중요결론은 다음 몇 가지이다.
 
 
 1 일본 정통사서 『일본서기』는 백제 25대 무령왕(501∼523)의 아들 순타태자의 후손인 고야신립(高野新笠)이 49대 일본 광인(光仁)왕에게 시집가서 50대 칸무왕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녀의 무덤이 현존함을 확인하고, 비석기록에도 그 내용(칸무왕 생모)이 그대로 적혀있음을 확인했다.
 
 2 공주시에서 71년에 발굴된 ‘무령왕릉의 묘지석’ ‘청동거울인 인물화상경’ 『일본서기』 이렇게 세 곳에 새겨진 무령왕 관련기록에서 “무령왕은 사마(생전이름)왕”이라고 똑같이 적혀 있음이 확인됐다. 여기서 일본의 각라(各羅)섬에서 탄생한 무령왕이 40살에 백제왕에 즉위하기 전인, 탄생 후 40여년간 행적기록이 전혀 없는데, 인물화상경(일본왕의 제사도구)에 적힌 사마왕 기록으로 추정하여, 백제왕 즉위 전에 일본왕위에 먼저 올랐을 가능성이 많다.
 
 3 두가지 기록, 즉 첫째는 일본왕가 계보인 『신찬성씨록』의 “대원진인(왕족성씨) … 민달의 후손은 백제왕(大原眞人 … 敏達孫, 百濟王也)”라는 기록과, 둘째는 『일본서기』의 “30대 비다쓰(민달)왕이 백제궁을 지었고, 그의 손자인 34대 죠우메이(서명)왕은 조상신(백제왕족)을 모신 백제신사 옆에 백제궁을 짓고, 그 속에서 말년을 살다가 죽을 때도 백제대빈(百濟大殯)이라 하여 백제왕실 장례식(3년상)을 치르게 할 정도로 백제를 못 잊어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
 
 4 다음 두가지 기록에서 당시 백제와 일본의 권력(명령)체계는 백제왕 → 백제왕자 → 실권자 소가씨(또는 일본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위 내용과 함께 생각해보면, 일본은 백제를 상국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구당서』「왜인전」에 “백강구 전투(663년) 당시에 백제 충승·충지 왕자가 왜군과 탐라국 사신을 함께 거느리고 신라-당 연합군에 투항했다”고 적힌 기록이다. 둘째는 『일본서기』에 “642년 일본왕을 갈아치울 수 있는 당대 최고실권자 소가 우마코(소아마자蘇我馬子)는 일본에 온 백제왕자에게 향응을 제공하고, 백제왕자와 친히 대화(일종의 상관에 대한 정치보고)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백제왕이 대리인(백제왕자)을 통해 일본국을 간접 통치했음을 확인했다. (소가씨 가문은 당대 실권자로서 사실상 최고권력을 약 100년간 누리는데, 미즈노 유우의 저서 『천황가의 비밀』에 “이 소가씨 가문은 본래 한국에서 건너온 가문이다”라고 되어있다. 일본왕도 백제왕족, 최고실권자도 백제귀족, 이것만 봐도 백제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5 결론으로, 이 분야의 독보적 저술가인 최재석 교수는 “30대 민달왕의 조상도 백제인이고 민달 후손도 백제인, 그러므로 모든 일본왕은 백제왕족인 것을 말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위 사실을 근거로 보면, 분명히 고대 일본(왜)국은 백제왕가와 혈연으로 연결된 국가이다. 정치·문화적으로는 300년간(근초고왕 칠지도 사건∼멸망 의자왕) 백제 밑에서 간접통치를 받으며, 백제의 찬란한 선진문화를 받아들였다. 그러므로 고대 일본(왜)은 대백제국에서 파생된 혈연적 분국(分國,제후국)이라는 특성을 띄고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지 생각해 보자.
 
 
 왜국, 멸망한 모국과 단절하여 일본으로 새롭게 탄생하다
 
일본 국호 사용과 한일동족론 고문서 분서 사건
 660년 백제 멸망 후, 백제유민들은 혈연국인 왜국의 군사(수만명) 지원을 받아 백제부흥운동을 일으킨다. 당시에 일본 37대 제명여왕(의자왕 여동생)은 본국 백제를 되찾기 위해 군선을 건조하고 탐라국에 참전을 요구하고 왜병을 사비성에 파견하지만 지도층의 내분으로 결국 실패하고 만다.
 
 부여용(의자왕 아들)은 망국의 깊은 한을 품고 유민을 거느리고 왜국에 건너가서 38대 텐치(천지: 661∼671)왕이 되고, 국호를 왜(倭)에서 일본(日本: 해뜨는 본국)으로 고친다5)(『일본서기』 「천지왕조」 참조). 이것은 한국고대사(특히 백제 역사 )에 속한 왜(倭)국 역사 에서 새로운 나라 일본(日本)이 탄생한 사건이다.(668∼670년)
 
 일본 정사(正史)인 『고사기』, 『일본서기』는 서기 8세기 초기에, 『속일본기』는 8세기 후기에 편찬이 완료된다. 이때는 의자왕 후손들(38대 이후)이 일본왕으로서 통치하던 때로, 일본은 멸망한 본국(백제국)에 속한 왜국에서 벗어나 자주국 일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때였기에, 일본 정통 역사 서들을 대부분 이때 편찬해낸다. 그 목적은 일본의 초대왕 이후 모든 왕들을 하늘신의 아들로 묘사하여 일본왕에게 신성(神聖)함을 부여해서 국민통치의 정통성을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그 이후 50대 칸무(환무: 781∼806)왕 때는, 일본과 한(韓)민족은 같은 민족이라는 ‘한일 동족론’이 적힌 고문서(옛 족보)를 모두 불태워 버린다. 칸무는 본국(백제)과 단절하는 정책을 편다. 그러나 그는 백제인을 고관요직에 많이 등용하고 기존의 백제문화 토대 위에서 ‘새롭고 자주적인 나라, 일본을 만들어나가는’ 정책을 대부분 매듭짓는다.
 
 옛 족보를 불태운 칸무는 “내 생모가 무령왕 후손”임을 자랑스레 밝히려 했지만, 부계 조상(=의자왕)에 대해서는 오히려 말을 아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백제는 무령왕(25대)∼성왕(26대)때 찬란했던 문화대국이었고, 의자왕(31대)은 멸망국 비운의 왕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쇼토쿠 태자는 일본인들이 백제 성군이었던 성왕의 화신이라 생각하며 고대 일본문화의 꽃인 아스카시대를 열었던 통치자이다. 무령왕 후손인 그의 통치(섭정)시대를 열망해서일까?
 
 칸무는 794년, 헤이안(平安京: 현,교토)에 도읍지를 옮겨 헤이안 시대를 열어나간다. 신생국 일본은 헤이안에서 8∼19세기(1860년대 메이지 이전)까지 1천년간 사실상의 수도가 되어, 왕도(王都)와 막부(幕府: 무사정권) 문화를 펼쳐나간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 초기(795∼ )부터 비로소 고대 백제사로부터 독립(이질화)된, 일본국 특유의 문화를 펼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칸무왕의 ‘한일동족론 문서의 분서(焚書) 정책’은 본국(문화선생국) 백제 역사 와의 단절을 통해, 자주적 일본국으로 태어나서 ‘소(小)백제(=일본) 문화국가의 탄생’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그러나 백제 멸망 이후부터 서서히 고대 한국의 역사 ·문화와 분리되어 독자적인 길을 걸은 일본국은 끊임없는 침략을 일삼으며 문화적 스승·부모국인 우리나라를 괴롭혀왔다. 그러더니 조선말 1910년에 이르러서는 사실상의 모국(母國)인 우리나라의 국권마저 침탈함으로써, 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뿌리를 배신하는 배은망덕(背恩亡德)의 대죄를 범하고 말았다.
 
 지금은 지나온 역사 과정을 총체적으로 심판하는 우주가을 개벽기이다. 오늘날 일본의 작태( 역사 왜곡 망언, 독도분쟁 등)는 근본(스승국) 뿌리를 배신하는 배사율(背師律)과 부모(부모국)와 조상을 바꾸고 부정하는 환부역조(換父易祖)의 대죄를 짓는 행위이다.
 
 천지를 모르고 날뛰는 어리석은 일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세상이치를 모르고 좌충우돌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처럼 그저 안타까움울 뿐이다.
 
진성조_ 증산도 본부

 
 〈참고문헌〉
 홍윤기, 『일본천황은 한국인이다』(효형출판, 2000) | 고준환, 『하나되는 한국사』(범우사, 1993) | 카와이 아츠시, 『하룻밤에 읽는 일본사』(중앙 M&B, 2000) | 사이카와 마코토, 조양욱 역, 『천황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다락원, 2004) | 이원복, 『21세기 먼나라 이웃나라 8-일본 역사 편』(김영사, 2006) | KBS, 히스토리 채널, 〈일본천황가는 백제인인가?〉

한민족 고대사에 얽힌 동북아 역사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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